숫자는 바뀌었는데, 금리는 안 바뀌었다
2월 26일 오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금통위원 7인 전원 참석. 6연속 동결이다.
지난해 5월 2.75%에서 2.50%로 내린 이후, 7월·8월·10월·11월, 그리고 올해 1월까지 꼬박 다섯 번을 묶었고, 오늘 여섯 번째다. 다음 금통위가 4월 10일이니까, 적어도 11개월 동안 같은 숫자를 쳐다보게 된다.
동결 자체는 놀랍지 않다. 시장 전문가 전원이 예상했고,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문제는 이 동결의 ‘맥락’이다.
성장률은 올렸다 — 1.8%에서 2.0%로
한은이 오늘 함께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이 진짜 뉴스다.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1.8%에서 2.0%로 올렸다. 0.2%포인트. 숫자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한은이 성장률을 한 번에 0.2%p 올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KDI가 1.9%, IMF가 1.9%를 제시한 상황에서 한은이 2.0%를 찍었다는 건 정부 전망치와 완전히 일치시킨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반도체다.
2월 1~10일 수출이 전년 대비 44.4% 증가했다. SK하이닉스가 어제 용인 클러스터에 31조를 베팅했고,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HBM4 양산을 시작했다. 코스피가 어제 6000을 돌파한 것도 이 두 회사가 끌어올린 거다.
수출이 경제를 살리고 있고, 한은도 그걸 인정했다. 내년 성장률은 1.8%로 제시했다.
물가도 올렸다 — 2.1%에서 2.2%로
소비자물가 전망도 2.1%에서 2.2%로 0.1%p 상향했다. 목표치 2%를 넘기는 수준이다.
환율이 여전히 1,400원대 중반에서 놀고 있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유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수입 물가 압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장률을 올리면서 물가도 올렸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다.
내릴 이유가 없다.
서울 아파트 54주, 환율 1,400원 — 올릴 수도 없다
그러면 경기가 좋으니까 올리면 되지 않느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54주 연속 상승 중이다. 2월 셋째 주 기준 전주 대비 0.15% 올랐고, 상승폭은 줄고 있지만 방향은 여전히 위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주택자 대출을 틀어막고, 매물 압박을 걸고 있는데도 54주째 오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429~1,450원 사이를 오간다. 12월에 1,480원을 찍으며 1,500원을 위협했던 것보다는 나아졌지만,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한미 금리차가 1.25%p다. 미국이 3.50~3.75%인데 우리가 2.50%다. 여기서 금리를 더 내리면 환율이 튄다. 올리면? 경기 회복세가 꺾인다.
이창용 총재가 1월 금통위에서 한 말이 정확히 이 상황을 요약한다.
“금통위원 모두 최근 성장세가 다소 나아졌지만, 주택 가격과 금융 안정 리스크는 여전하거나 오히려 올랐다는 점에서 현재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동의했다.”
한화투자증권 김성수 연구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2026년은 동결의 해.”
인하 사이클은 끝났다
시장이 읽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끝났다.
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추가 인하 가능성’, ‘인하 여부 및 시기 결정’ 같은 문구가 삭제됐다. 2024년 10월부터 시작된 100bp 인하 여정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되돌아보면 이런 흐름이다.
2023년 2월~2024년 8월: 기준금리 3.50%, 13차례 연속 동결. 2024년 10월~2025년 5월: 4차례 인하, 3.50%→2.50% (총 100bp). 2025년 7월~2026년 2월: 6연속 동결.
내릴 때는 빠르게 내렸지만, 내린 후에는 꼼짝도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올릴 명분도 내릴 명분도 없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3점도표 — “나도 모르겠다”를 제도화하다
오늘 한은이 하나 더 꺼냈다. 포워드가이던스 개편.
기존에는 3개월 시계로 금통위원 개별 전망을 제시했다. 이걸 6개월로 늘리고, 금통위원 7인이 각자 3개의 점을 찍는 ‘3점도표’를 도입한다.
미 연준의 점도표는 19명이 각자 1개 점을 찍어서 분포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한은은 7명이 3개씩 찍는다. 확신이 강하면 한 곳에 3점을 몰고, 불확실하면 여러 구간에 나눠서 배치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
“2.5%가 맞다고 확신하는 위원”과 “2.5%일 수도 있고 2.25%일 수도 있다고 보는 위원”이 같은 동결 표를 던져도, 그 속내는 다르다. 3점도표는 그 차이를 보여준다.
한은 스스로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걸 시장에 투명하게 전달하겠다는 뜻이다. 솔직한 제도 설계다. 발표 빈도도 연 8회에서 4회로 줄여서 수정경제전망과 연동시켰다.
진짜 질문 — 이 교착은 언제 풀리나
한은이 다시 움직이려면 뭐가 바뀌어야 하나.
인하 시나리오: 환율이 1,300원대로 안정되고, 집값 상승세가 확실히 꺾이고,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내려서 한미 금리차가 줄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2026년 안에 이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가능성은 낮다.
인상 시나리오: 환율이 다시 1,500원을 위협하고, 물가가 2% 중반에서 고착화되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창용 총재가 1월에 “환율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론적으로, 2026년 내내 2.5%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코스피 6000 시대, 중앙은행의 역설
어제 코스피가 6000을 돌파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SK하이닉스가 31조를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오늘 새벽에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있다.
시장은 이렇게 뜨겁게 달리고 있는데, 중앙은행은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인 상황이다.
그게 지금 한국 경제의 구조다.
반도체가 수출을 살리고, 수출이 성장률을 끌어올리지만, 그 성장의 온기가 부동산과 환율이라는 두 개의 지뢰밭 위에 서 있다. 내리면 지뢰가 터지고, 올리면 성장이 꺾인다. 그래서 한은은 움직이지 않는다.
2.5%라는 숫자는 경제가 좋아서 유지되는 게 아니다. 모든 방향에 리스크가 있어서 유지되는 거다.
다음 금통위는 4월 10일. 그때 한은이 꺼낼 첫 번째 3점도표가, 이 교착의 실체를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