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나
3월 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독일 메르츠 총리와 회담한 직후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콧(베선트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의 모든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했다.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차단할 것이다. 우리는 스페인과 아무 관계도 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스페인이 자국 내 미군 기지를 이란 공습 작전에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남부의 로타(Rota) 해군기지와 모론(Morón) 공군기지는 미군이 지중해 및 중동 작전에 활용하는 핵심 전진기지입니다. 미 공군은 이 기지들에서 이란 공습을 위한 출격과 급유, 정비를 수행하려 했지만, 스페인 정부가 이를 불허했습니다. 결국 미군은 해당 기지의 항공기 15대를 다른 곳으로 재배치해야 했습니다.
스페인은 왜 거부했나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무장관의 설명은 명확했습니다. 이번 군사행동이 미·스페인 양자 방위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유엔 헌장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전부터 미국과 여러 현안에서 충돌해왔습니다. 이스라엘행 무기 운송 선박의 자국 항만 입항을 거부한 적이 있고, NATO 회원국 GDP 대비 국방비 5% 확대 요구에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는 “MAGA식 지도자들이 이민 문제의 해악을 과장하고 있다”고 직접 비판하기도 했죠.
한마디로, 스페인은 미국의 이란 공습 자체를 국제법 위반으로 보고 있으며, 거기에 자국 영토가 활용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트럼프의 보복: 무역 전면 차단 위협
트럼프의 대응은 즉각적이고 과격했습니다. “무역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겁니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습니다. 스페인 증시 마감 후 아이셰어즈 MSCI 스페인 ETF가 한때 6% 넘게 급락했습니다. 스페인의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와인, 올리브오일, 자동차 부품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영국도 같은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영국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를 이란 공습에 사용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놀랐다”며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윈스턴 처칠이 아니다”라고 비꼬았지만, 스페인에 한 것처럼 무역 위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에는 비꼼, 스페인에는 경제 보복. 이 차등 대응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트럼프에게 동맹의 가치는 전략적 유용성으로만 측정되며, 유용하지 않은 동맹은 적보다 더 가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NATO가 쪼개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미·스페인 양자 갈등이 아닙니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NATO 내부에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현재 확인된 각국의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국 편에 선 국가들: 이스라엘(공동 작전 수행), 사우디(기지 제공), 바레인(기지 제공)
거부 또는 거리두기: 스페인(기지 사용 거부 → 무역 보복 위협), 영국(디에고 가르시아 기지 사용 거부, 법적 근거 요구), 독일(메르츠 총리 회담 — 입장 미공개), 폴란드(핵무장 독자 추진 발표)
영국의 수석장관은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교훈을 배웠다”며 “명확한 계획과 법적 근거 없이 중동 전쟁에 돌입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 총리는 아예 자체 핵무기 추진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을 100% 믿을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이란 전쟁 5일 만에, NATO의 근본 전제인 “미국이 동맹을 지킨다 → 동맹이 미국을 지원한다”의 교환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평택기지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한국 독자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대만해협 위기나 아시아 유사시에, 한국이 평택 미군기지의 작전 사용을 거부하면 트럼프는 어떻게 나올까?
스페인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스페인: NATO 회원국. 미군 기지 2곳(로타, 모론). GDP 대비 국방비 약 1.3%. 이란이 스페인을 직접 위협할 능력 없음. 지리적으로 전장과 거리가 있음.
한국: 한미상호방위조약. 미군 기지 다수(평택 캠프 험프리스 포함, 주한미군 약 2.8만 명). GDP 대비 국방비 약 2.8%. 북한이라는 직접적 안보 위협 존재. 지리적으로 잠재적 전장과 인접.
스페인은 이란에게 직접 공격받을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거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무역 전면 중단”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냈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직접적 안보 위협 때문에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가 스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습니다. 동시에, 중국이라는 최대 교역국과 미국이라는 최대 동맹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스페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트럼프 시대의 동맹은 “무조건적 지원”이 전제된 관계가 아니라, “기여도에 비례하는 보호”라는 거래적 관계라는 것. 기여하지 않으면 보복이 올 수 있고, 그 보복의 수단은 관세, 무역 차단, 주둔군 감축 등 경제적·군사적 레버리지 전부를 포함합니다.
전쟁이 동맹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5일. 전장의 피해만 커진 것이 아닙니다.
전쟁 전에는 보이지 않던 동맹의 균열이 전쟁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기지 사용을 거부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영국은 “이라크의 교훈”을 들며 참전을 거부했습니다. 폴란드는 미국의 보호를 더 이상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핵무장 선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코스피 -7.24%, 원/달러 1,500원 돌파,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도, 이 동맹 재편의 파도가 아시아에 닿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이 보여준 것은 “No”라고 말했을 때 치러야 하는 비용입니다.
한국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 질문이 한국에게 던져졌을 때 “Yes”와 “No” 각각의 비용을 계산해두는 것입니다. 두 선택지 모두 공짜가 아닙니다.